늙은이의 설음

2009. 9. 22. 11:26



여보게 가을...!
작년에 왔던 가을 아니던가!
지난 봄,여름 어디에 제쳐두고 자네 혼자란 말이든가.

흙담밑 양지바른 곳에 돌더미를 괴고 앉아 낡은 외투속에서 담배쌈지를 꺼내든다.
이마의 깊은고랑 앞산에 층계 밭고랑 같고 담배를 마는 손 잔등은 깊은 산속 소나무 껍질과 같으니 그 세월이 무상하여도 수백번 무상 하련만 늙은이는 말이 없다.

촉촉한 눈빛은 초점마져 흐려서 멀고 먼 산자락을 보는지 하늘끝 자락을 보는지 짐작을 가늠하기 어렵고....
활처럼 굽은 등에서는 오래묵은 세월의 딱지가 덕지덕지 이끼를 달고 담배연기에 팔랑인다.

소년시절 풋풋하고 당찼던 청춘 뒤로하고 화살같은 세월을 감당못해 검버섯을 훈장처럼 얼굴에 찍은 늙은이는....   

하루 왼종일 고독과 외로움을 상대로 쌈박질에 지쳐 무심한 담배재만 톡톡 털어댄다,  
잠자리 들때마다 내일 신을 것처럼 토방밑에 신발을 되돌려 놓지만 낡은 천장엔 요즘따라 자주 검은옷 입은 저승사자가 눈에 보인다.

이불속 온기도 없다.
할망구가 있을땐 이러지 않았는데....늙은 삭신끼리 부딛치고 비벼도 이러진 않았는데...

그래....
가는게 맞는겨...
가는게 맞는겨...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비단실 울음이고 머리까지 올려덮은 이불속의 어깨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올때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갈때는 누구에게 줄 슬픔이 없다.



'나눔 > 나의 영혼 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갠지 뭔지 죽고잡나  (0) 2009.09.27
불혹  (0) 2009.09.22
가을 차(茶)  (0) 2009.09.22
밤 깊은 서면 지하도  (0) 2009.09.22
어린이날 막내는...  (0) 2009.09.22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듯  (0) 2009.09.22
자화상  (0) 2009.09.22
하얀 그리움이 피어 오르면  (0) 2009.09.22
전장 같은 삶  (0) 2009.09.22
가을  (0) 2009.09.22

특파원 나눔/나의 영혼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