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을인가 보다
문밖 은행나무가
뻘쭘히 서 있는 걸 보니
가을인가 보다.
늙은 지아비의 낡은 양복
어깨 죽지에
내려앉은 흰 비듬 같은 세월들...
아직은 몇 장의 은행잎들이
까막까막 점점
얼룩진 저승꽃 같아
차마 가을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
무상한 세월을 한탄이야 왜 않으랴만
차마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
여기까지 온다는 약속을 한 적도 없었다.
여기까지만 오겠노라고
다짐한 적도 없었다.
숨 쉬는 세월 따라
허둥대며 다다른 곳이
또 다른 가을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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