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어느오후,시내버스 안에서

2009. 9. 27. 21:15



햇살이 봄볕치곤 제법 따가운 오후....


시내에 나가기 위해 오랜만에 버스에 올랐다.
버스엔 한가로운 오후 시간대를 나타내듯 듬성듬성
웅크리고 앉아있는 승객들로 느슨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승차 한 후 몇 정류장을 지나서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하자 몇명되지 않는 승객들 틈에
머리는 희고 키는 작았으며 낡은 누더기에 안짱 걸음으로 절룩 거리듯
버스에 오르는 50대 후반인 듯한 여인이 보인다.


남들이 앉을세라 몇 안되는 빈 의자를 빼앗기지 않을려고
허둥대듯 앞 사람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 온 여인은 다행히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앉자마자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나 연신 중얼거리며 욕도 하다가 웃다가 앞 뒤 사람에게 말도 걸다가 한참을 그러더니 조그만 박카스병을 꺼낸다.
그리곤 그안에서 살아있는 작은 달팽이를 꺼내 앞의 의자 등에다 붙여 놓는다.


 달팽이는 의자를 타고 빙글 빙글 돌며 붙어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그 모양을 보며 한참을 혼자 웃는 여인...다시 그 달팽이를 잡아서 박카스병에 넣더니
병을 입에대고 입맞춤을 한다...쪼~옥~!


내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그 기이한 여인의 행동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5일 장터에 각설이 장타령 구경하듯 재미있어 하는 모습들이다.
나도 그런 여인의 모습이 흥미롭고 재미있어 눈길을 뗄 수 없었지만 머리속으론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왜....어째서...저 여인은 저런 행동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걸까! 
그저 얻어먹고 사는 거렁뱅이는 아닌듯 한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남의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여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한낮 오후 햇살은 여인이 앉은쪽으로 비쳤고 봄날인데도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있는 여인의 이마는 번들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갔다.
이윽고 너무 더웠는지 창문을 활짝 열어 버린다.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달리는 버스창문을 열고 보니 차안으로 칼날같은 바람이 매섭기까지 했다. 방금까지 아무말도 없던 차안에 갑자기 정적을 깨는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XX~거 문좀 닫으소~!"


나도 놀라고 다른 사람들도 놀라고....
돌아다 보니 나이가 60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자 승객이 고함을 지른것이다.
그리고 잠시, 바람 소리만 창문을 치고 울릴뿐 정막이 흐른다 싶을때였다.
앉았던 여인이 벌떡 일어나 노인에게 달려드는가 싶더니 남자의 얼굴을 후려친것이다.
그리고 침뱉듯 허공에 던지는 말...!


"XXX야~ 내 돈주고 탔는데 창문도 내맘대로 못열어?"


"난 지금 더워 죽겠는데...지랄이고~"


누가 신고를 했는지 버스앞을 가로막는 112경찰차 뒤에 버스는 멈췄고 사건 경위를 운전기사에게 물은 뒤 여인과 코피가 터져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는 경찰차를 타고 저만치 사라졌다. 


곧 버스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움직였고 차안에 승객들은 방금전의 일을 잊은듯 무관심했다. 창밖을 바라봤다. 차선들이 영화 필름처럼 이어져 같이 달렸다.


까만 도로위에 방금 있었던 그 일들을 다시 그려 보았다.
세상은 참 복잡하고 미묘했다.


그리고...육신이 부족한 사람들은 무섭지 않는데 정신이 부족한 사람은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육신이 부족한 사람을 가두는 병원은 없어도 정신이 부족한 사람을 가두는 병원은 있나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들이지만 새삼스러웠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스피커는 안내하고 있었다.
벨을 누르고 조용히 뒷문으로 걸어간다.
그때에도 차안으로 비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은 따스하기만 했다.
차안의 창문들이 다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04월 20일 버스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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