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조사들을 따라나선 '벌'

2009. 10. 28. 08:55


토요일 오후..
절에 다닌다는 이유로 동생이 다니는 낚시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나였다...
그러나 집요하게 같이 가자고 얼마나 졸졸 따라 다니던지.. 한술 더 떠서 어머니도 같이 바람이나 쐬러 가잔다..
동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소풍 간다는 마음으로 짐을꾸려 길을 나섰다..

며칠전 밀양을 갔을때(땅을 사러 다닐때) 봤던 저수지를 이야기 했더니 그곳으로 가잔다.
조카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나.. 그렇게 4명이 푸른녹음을 뒤로 한채 시골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밀양군 청도면..
저수지에 도달한 동생은 그곳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차를 돌려 자신이 책자에서 봐 두었던 곳으로 이동을 하자고 그런다..

창녕 번개늪..
동생도 그곳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이고 낚시 책자를 봤다는 것이다. 지도를 잘못 그렸는지 우리들이 찾지 못했는지 같은 길을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 거리다가 부산을 출발한지 5시간만에 물어서 물어서 번개늪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동생은 낚시대를 펴고 나는 텐트를 치고... 어머니는 숯불에 고기를 굽는다고 그릇들을 펼쳐놓으신다..
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짐들.. 붕어와 잉어는 찾아 볼 수도 없고 <부르길>이라는 고기만 연신 올라온다..
블루길은 그옛날 박정희정권때 농어촌 소득증대란 이름으로 각 이장들을 통해서 분양받아 저수지에 풀었던 고기란다..
그때 들어온 고기가 지금 우리 향토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베스와 황소개구리..그리고 블루길.

저녁을 푸짐히 먹고 어머니와 둘이서 텐트속에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고스톱을 열심히 배워봤다.
어머니도 늦게야 고스톱을 배우셨단다... 동네 할머니들과 놀때면 그넘의 고도리땜에 항상 왕따였는데 인제는 아니라고...

조카와 동생은 연신 물통을 가지러 오기도 하고
수박을 쪼개라...
참외를 깎아라...
주문도 많았지만 어머니는 재미있나보다..

두 며느리는 낚시가 취미 없다며 아예 따라다니는걸 포기한지 오래고...

밤은 깊어가고 28만평의 번개 늪지에서 가끔 고기들이 솟구 쳤다가 다시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풍덩"하고 크게 들리고 황소개구리 울움 소리가 귀신의 장송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에 질세라 토종 개구리도 귀에 익은 목소리로 열심히 울어댄다.

언제 부턴가 잠자리가 불편해서 일어나 보니 조카와 동생이 텐트속에서 잠을 잔다. 시계를보니 새벽 1시..
밤 새운다더니 왜 들어왔나 궁금해서 후레쉬를 들고 나가 봤더니 고기 한마리 잡지 못하고 릴대는 긴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줄은 산발을해서 꼬여있고... 아마도 화가 나서 포기하고 들어온 모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깨웠더니 벌떡 일어나 낚시터로 간다.. 아무것도 없는 물안개 뽀얗게 피워 오른 수면위로 덩그러니 낚시찌만 죽은듯이 꼼짝없이 꼽혀있다. 아침을 준비 할려는데 동생이 그런다 ..철수 하자고..

난 집에 가자는 소린줄 알았는데 가다가 다른 저수지에 한번 더 들르잔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밀양 수산쪽으로 차를 달렸다..
이름도 모를 동네가 보이고 저..산밑에 보이는 저수지둑... 오늘 낚시는 마지막이라며 그곳을 동생은 택한다..
바람도 없는 저수지둑에서 우산을 양산삼아 어머니와 난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저것들은 낚시라도 하지만 우린 이게 뭐고..."
나도 한마디 거든다...
"그러게 말이요...따라온 내가 미쳤지....휴.."

아이스 박스에 있는 참외, 수박 나중에는 매운탕 할거라고 가져간 고추 당근까지 모두 된장에 찍어서 먹어 버리고 더위에 더 참을수가 없어 철수 하자고 화를 내버렸다..

동생과 조카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낚시대를 하나둘 접기 시작한다. 1박2일동안 붕어새끼 한마리 잡지 못한 조사들을 난 봤다..

일요일 오후...
얼굴은 검게 그을린채 빈 어망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매운탕으로 배를 채운다는 꿈은 환상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2003년 06월 09일 낚시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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