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2009. 9. 27. 21:07



연탄 구들장의 온기가 따뜻해 져 올 무렵...

난 동생들을 재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오시지 않는 어머님을 마중하기 위해서 입니다.

조그만 백열 전등이 만화책에서 본 김삿갓 처럼 흰 알루미늄 꼬깔을 쓰고 까만 전봇대 끝에 아슬 아슬하게 메달려 켜져 있는 좁고 긴 골목을 돌아 나서면 큰 길가 밤 바람은 차갑게 살갛을 파고 에이는 듯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저 만큼 보일라 치면 난 항상 작은 담배 점포 앞에서 팔짱을 낀채 서성거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하나 살펴 보는 재미도 솔 솔 했고 길 건너 낡은 레코드 가게에서 들리는 캐롤송도 듣기 좋았습니다. 특히나 담배 가게는 모형 비행기나 모형 자동차를 파는 곳이기도 했는데 그 모형들을 보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이 더 재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재미가 없으면 가로등 불빛에 그려진 내 그림자를 밟는 놀이도 하고 내 앞을 스치는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덧셈하는 놀이도 하고...

길 가에 작은 돌을 던져 놓고 열 번 째 지나가는 자동차가 그 돌을 밟으면 어머님이 오신다고 점쾌도 만들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한 동안 버스가 뚝 끊기듯이 오지 않습니다.

어린 내 가슴은 두근 두근...
혹시 어머니가 도망이라도 가지 않으셨을까...!

동생들과 싸울때나..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면...항상 멀리 도망가 버린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 하셨기 때문이였습니다.
안되는데..안되는데....지금부터 공부도 잘하고 동생들과 싸우지도 않을거라 맹세 하면서 버스가 오기만을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그러다 버스가 오면 혹시 어머님이 앉아 계시다 졸아서 못 내릴까 봐 까치발을 하고 버스속을 두리번 거리며 올려다 봅니다.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둔 밥이 식기 전에 오셔야 할텐데...
코끝은 이미 얼어서 감각이 무디어 졌고 얇은 내복바지 사이로 찬 바람이 거침없이 들어왔습니다.
검정 고무신속에 발가락도 시려왔습니다.

마침내 콩나물 시루 처럼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찬 버스가 정류장에 삐~익 소릴 내며 멈춥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어머님이 내리실때 마치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이산 가족이 만난것 같았습니다.어머님은 추운데 나와 있다고 나무라시면서도 어린 아들 마중이 싫지 않으신지 얼음장 같은 내 두손을 꼬옥 잡고 입으로 호~ 불어 주십니다.

난 그제서야 좁다란 긴 골목을 껑충껑충 뛰어가며 콧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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