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부처가 그리운 세상

2009. 2. 10. 09:19

 

 

나는 21년이나 긴세월을 다니던 절에 나가지 않는다.
꽤 오래 되었다. 절에 나가지 않은지가....
굳이 이유를 대라면 게을러서라고 말하는게 맞겠지만 부처를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는 나의 못된 습성도 문제인듯 하다.

먼길을 마다않고 사찰에 다녔던 것은 절에 가시자 할때 마다 소녀처럼 즐거워 하신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느 절이건 보통 암자나 사찰은 그 길이 참 험난하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안에 절은 입구까지 길이 잘 닦여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입구에 차를 대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때론 입구에 입장료를 받는 사찰들이 더러 있는데 일반 신도들 승용차는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게 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어머니와 둘이서 가파른 산길을 헉헉 거리며 오를때 뒤에서 전자 크략숀을 치며 시커먼 물체가 달려든다.
얼른 길을 피해주고 보니 국내 SS사의 최고급 승용차인데 안을 보니 법복을 곱게 입으신 스님이 앉아 계신다.

염병할~
땀을 비지처럼 흘리시고 산길을 오르시는 어머님 보기가 미안스러워진다.
나의 어머님은 누구를 위하자고 지금 이길을 사색이 다 되어 가며 오르실까!
고급 승용차에 앉아 계시는 스님의 모양새는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이라고 할수 없었다.
나와 내 어머니의 헉헉 거리며 오르는 모습을 보고 저 스님은 무슨 생각을 할까!

비탈진 땅을 내려다 보면서 걷다가 문득 내 책장에 꽂쳐 있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란 책이 생각난다.
성철 스님은 그책에서 스님을 중노릇 못하게 만드는것이 모두 신도들 책임이라 하셨다.
"중 한테 돈이 왜 필요해?"라시며 중들에게 돈 갖다 주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 사찰마다 대형 불상 조성에 서로 앞 다투워서 꼴불견이다.
왜 마음속에 부처는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자꾸 눈에 보이는 아상을 심어 주려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살지만 알게 모르게 아상과 욕심을 부추기고 가르치는 종교계가 더 큰 문제인듯 하다.

경남 사천에 어느절은 큰 통나무를 가지고 와불을 조성해 놓았는데 그 와불은 법당속에 누워 계셨다.
또한, 그 와불속을 파서 부처님 뱃속에다 법당을 꾸며 놓았는데 그속을 한번 들어 가려 했더니 시주를 하지 않으면 못들어 간단다. 이것또한 "염병할" 이다.   

한때는 부산 기장에 있는 해동 용궁사란 절 입구에 제주도의 돌 하루방이 느닷없이 좌우로 서 있어서 깜짝 놀랜적이 있었다. 그 돌하루방 앞에는 불전이 놓여 있었는데 한참후 그 절을 다시 찾았을땐 철수하고 없었다.
지금은 열두 십이지 상들이 앞에는 불전함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늘상 내가 잘하는 말이 있다.
모두가 부패하고 더러워진 세상일지라도 종교인들과 선생님들만 깨끗하다면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그러나 종교인들이 썩고 선생님들이 부패해 가는 이 세상은 그 희망이 불빛이 희미하다 하겠다. 

특파원 공감/불편한 진실의 편파적 시선